들고 있는 수첩은 뭐예요?
일기장이에요.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요. 인터뷰 도중에 일기장이 필요할까 싶어서 가져왔어요. 커닝 페이퍼예요.
뭐가 쓰여 있죠?
순간순간 떠오른 생각이나 기억해야 할 것을 적어둬요. 연극을 시작하면서부터 썼어요. 기억력도 없지만 끈기도 없는 편이라 매년 다이어리는 1,2월만 채우고 못 썼는데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면서부터는 기록해야 할 필요를 느꼈죠. 과거의 것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, 지난날을 다 버리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.
연기를 위한 건가요?
연기보다는 저 자신을 위한 일이죠.
쉽지 않겠지만 이제 기억을 좀 해볼까요. (웃음) 지난 8월,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 여자 신인연기자상을 받으며 “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도 <아가씨>의 숙희가 된 것도, 지금 이순간 상을 받는 것 까지 모두 우연”이라는 말을 했죠?
우연처럼 만난 사람들과 맞닥뜨린 사건들이 지금 이 순간 훨씬 더 값지게 느껴진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. 세상에는 많은 인생이 있잖아요. 무수한 길 가운데 단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요. 제가 과거의 한순간에 특정한 생각을 했다는 것, 그리고 선택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더라고요. 배우가 되는 데 영향을 미친 수 많은 우연들에게도요.
박찬욱 감독과 첫 상업 장편영화를 찍고, 칸 국제영화제까지 갔어요. 배우로서는 절정이라 부를 만한 최고의 경험이 필모그래피의 시작점이라는 게 장단점이 있죠?
<아가씨>를 만난 것이 내게 좋은 일이 될 수 있을까, 지금 내 상황에서 지나치게 큰 작품과 큰 역할을 만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죠. 당시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더 많아 고민도 많았고요. <아가씨>를 만나서 얻은 장점이야 아주 많죠. 이 자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, 앞으로 얻게 될 많은 기회도 <아가씨>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까요. 하지만 아직은 내 인생에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확답하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아요.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났을 뿐이니까요.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큰 장점으로 남길 바라죠.
작년 10월까지 <아가씨>를 촬영했죠. 딱 1년이 지났네요. 그 사이 가장 많이 변한 건 뭔가요?
많이 불안해졌어요. 1년 사이가 아니라 <아가씨>를 시작하기 전과 후를 생각해봤을 때 그래요.
어떤 종류의 불안이에요?
제가 배우를 업으로 삼기로 한 건 이 일에 재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잖아요. 그래서 <아가씨>를 만나기 전에는 거침없이 연기한 것 같아요. 그런데 지금은 ‘난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’하는 생각이 폭풍처럼 들이닥칠 때가 있어요. 물론 하루 걸러 하루씩 생각이 바뀌긴 하지만요.
모든 사람이 배우 김태리가 좋은 연기를 했다고 말하는데도요?
네. 제 생각에는.
칭찬에 무딘 건가요?
저 칭찬 아주 좋아해요.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참 좋은데 그냥 그걸로 넘겨요. 칭찬이 그날의 제 마음까지 변하게 만들진 않아요. 또 이런 태도가 중요한 것 같고요. 적어도 사람들의 칭찬에 나를 놓아버리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.
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칭찬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. 배우 김태리를 두고 ‘한 명의 아티스트’라고 표현했어요. 본인의 어떤 모습 때문에 그가 그런 말을 한 것 같아요?
큰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…..(웃음). 개봉하고 인터뷰할 일이 점점 늘다보면 감독님도 어쩔 수 없이 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게 되잖아요. 그렇다고 매번 같은 대답을 할 수는 없으니까 인터뷰가 거듭될수록 답변도 업그레이드된단 말이에요. 그 최종 진화형이 아닐까요?
지금 쑥스러워서 질문을 피하는 거 아니에요?
아니에요.(웃음) 감독님이 말씀을 참 잘하세요. 좋게 말씀해주신 거라고 생각해요.
칸 국제영화제에 가면서 출입국신고서의 직업란에 배우라고 쓰는 게 어색했다고요. 아직도 그래요?
지금도 학생이라고 써요. 그냥 스튜던트.(웃음) 배우라고 쓸 필요는 없잖아요. 누가 물어보면 말할 수 있긴 한데 굳이…..
자신을 배우라고 소개하는 게 낯간지러운가요?
아직 익숙하지 않아요.
대학생 때 학교에서 찍힌 ‘과거 사진’이 팬들 사이에서 인기인 거 알아요? 본인 몸이 두 개는 들어가고도 남을 큰 자주색 트레이닝복에 얼굴을 다 가릴 정도로 큰 안경을 쓰고 있는데도 예뻐서 모두를 좌절하게 하는 그 사진이요.
푸하하. 전혀 모르다가 나중에 알았는데 그 트레이닝복 친구가 준 거더라고요. 친구가 그 사진을 보내면서 ‘내가 준 옷 정말 잘 입고 다녔구나’하는 거예요. 도저히 그게 저라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내가 정말 저러고 다녔느냐고 물어봤더니 정말 그랬대요. (웃음)
꾸미는 데 관심이 없었나봐요.
꾸미는 거 좋아하는데 소질은 없나봐요. 또 끈기도 없어서 하루 예쁘게 꾸미고 나가면 바로 지쳐요. 그래서 다음 날에는 포기하는 거죠. 포기하면 편하고 좋으니까.
연극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건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수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할 텐데요.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결심이었나요?
지나고 나니까 그때 그런 건 상관없었구나 생각하지 당시에는 그런 고민조차 없었어요.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낼 수 있거든요. 버스비가 없어도 자전거 타고 다닐 수도 있고, 집에서 밥도 먹여주시고, 갖고 싶은 건 나중에 돈 생겼을 때 사면 되는 거니까요.
친구가 준 옷 입으면 되니까요.
네. (웃음)
하고 싶은 것에 대해 솔직하고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네요.
네.
자신에 대해 믿는 구석이 있다면요?
정도껏 사는 것. 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에는 자신이 있어요. 사람을 대할 때 상대방이 나를 비정상으로 느끼지 않을 수위를 지킬 수 있죠. 예의범절이 투철한 사람이랄까요. (웃음) 또 하나는 어떤 새로운 환경에 던져져도 나름대로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. 도태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요.
배우의 세계 밖에서도요?
배우 아닌 다른 직업을 가졌어도 그 분야에서 나름대로 살길을 찾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어요.
<아가씨> 이후 배우 김태리의 다음은 뭘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거예요. 모두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하게 된다 해도 괜찮을 자신이 있나요?
지금보다 연기를 못할 수도 있고, 덜 재미있는 영화가 나올 수도 있겠죠. 어떨 때는 관객분들한테 크게 혼날 수도 있고요.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한 계속 배우로 살 거예요. 인터뷰하다 보면 종종 “<아가씨>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”는 질문을 받아요. 그럴 때면 “그게 제 최고의 모습이라면 전 망하는데….”해요.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계속 연기해야겠죠. 물론 잠깐 고꾸라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마지막은 지금보다 훨씬 좋지 않을까요?
처음으로 돌아가서,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 말미에 ‘좋은 배우가 가져야 할 미덕에 대해 항상 생각하겠다’고 했죠. 스물일곱 살의 배우 김태리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란 어떤 배우인가요?
좋은 배우는 좋은 연기를 하는 배우죠. 그런 좋은 배우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해내는 것인 듯해요. 지금 생각에는 그래요. 경험이 많이 쌓이고 많은 작품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 같아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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